●함민복의 시 ‘김포평야’_[세계의 문학] 2005년 겨울호
김포평야에 아파트들이 잘 자라고 있다
논과 밭을 일군다는 일은
가능한 한 땅에 수평을 잡는 일
바다에서의 삶은 말 그대로 수평에서의 삶
수천 년 걸쳐 만들어진 농토에
수직의 아파트 건물이 들어서고 있다
농촌을 모방하는 도시의 문명
엘리베이터와 계단 통로, 그 수직의 골목
잊었는가 바벨탑
보라 한 건물을 쌓아 올린 언어의 벽돌
만리장성, 파리 크라상, 던킨 도너츠
차이코프스키, 노바다야끼......
기와불사 하듯 세계 도처에서 쌓아 올리고 있는
이진법 언어로 이룩된
컴퓨터 데스크탑
이제 농촌이 도시를 베끼리라
아파트 논이 생겨
엘리베이터 타고 고층 논을 오르내리게 되리라
바다가 층층이 나누어지리라
그렇게 수평이 수직을 다 모방하게 되는 날
온 세상은 거대한 하나의 탑이 되고 말리라
김포평야 물 괸 논에 아파트 그림자 빼곡하다
●핵심정리
▶갈래 : 자유시
▶성격 : 대조적, 비판적, 풍자적
▶제재 : 김포평야
▶주제 : 농촌의 무분별한 개발과 문명의 횡포에 대한 위기 의식
●이해와 감상
이 시는 ‘수직’의 이미지를 통해 무분별한 택지 개발로 인한 자연의 파괴, 세계화로 인한 언어와 문화의 혼란상, 디지털 문명의 폐해 등 인간의 욕망을 제어하지 못해 발생하는 현대 사회의 문제점들을 비판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아파트’와 ‘컴퓨터 데스크탑’, 그리고 ‘바벨탑’은 공통적으로 분할과 분열, 공동체적 삶의 해체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특히 ‘바벨탑’ 이야기를 끌어온 것은 위에서 제기한 문명 사회의 문제점들이 위대한 자연에 도전하는 이성적 인간의 거만하에서 비롯된 것이며, 욕망을 제어하지 않는 한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위기감을 환기시키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